[박연수 칼럼] 지도자의 결정과 미래-2025.03.31
지도자의 결정과 미래 - 국민안전역량협회 박연수 회장
나라가 어렵다.
국민은 힘들다.
세계정세는 혼돈스럽고 기술변화가 촉발한 미래는 요동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변화가 필요하고, 세상의 변화에 대한 대응이 긴요한 때다. 무엇보다 지도자의 역할, 바른 뜻과 옳은 결정이 요구되는 긴박한 시점이다.
세계의 누구도 하지 못한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와 빈곤의 늪 속에서 이룩한 발전의 역사는 국민의 피와 땀만으로 된 것이 아니다.
지도자의 옳은 비전은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고 동참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고, 시기에 맞는 결정은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방안이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배고파 못 살겠다”는 시대정신을 붙잡아 “잘살아보세”라는 비전의 깃발을 세우고 ‘조국 근대화’, ‘수출입국’, ‘새마을 운동’ 등 효율적인 어젠다를 발굴해서 비전을 실현했다. 국민들은 피땀으로 따랐고 대통령은 성공으로 보답했다.
그 비전은 지금까지도 국민들 마음속의 깃발이다.
그의 수많은 결정 중에서도 잊지 못할 것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이다.
상상할 수도 없는 반대가 있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중단이 답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반대를 이겨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 결정이 나라의 미래를 위한 것이었고 꼭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효과는 컸고 다양했다.
국토는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었고 국민들의 생활은 활기를 머금었다. 생산적으로 풀린 돈은 경제의 수레바퀴를 돌렸고 기업은 장비를 사고 사람을 고용할 수 있었다. 가장 긴요한 국가의 건설 시스템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전국 곳곳의 국민들이 새로운 것에 눈을 뜨고 변화를 체감하기 시작했다. 변화가 필요한 때 그 자체로 변화를 이끌었고 국민들에게 그 변화를 느끼게 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인프라』다.
나라는 발전의 축을 갖게 되었고 그 확산의 축이 되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6.29 선언으로 기억되지만 나라의 발전을 위한 어려운 결정을 많이 했다.
그중에 인천공항을 영종도에 입지 시켜 수도권 신공항으로 결정한 것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정치적 부담을 무릅쓴 결단이었다.
이 결정은 국토균형개발이라는 전통적인 정치권의 상식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그동안 금과옥조로 지켜 오던 정부의 수도권 억제정책을 뒤흔드는 충격을 감수해야만 했다. 거기에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반대 수준의 저항이 있었다.
국토균형발전 명분의 정치적 반대는 물론이고 초유의 바다에 짓는 공항이라 지반침하, 안개 문제 등 기술적 반대까지 극심했다.
지금 인천공항은 수출이라는 밑짝을 빼면 와르르 무너지고 마는 대한민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첨단제품 수출 국제물류의 최대관문이다. 대한민국 항공물류의 99%가 인천공항을 통해 이루어진다.
동북아의 항공물류 허브를 차지한 인천공항 덕분에 한국의 기업들은 가장 빨리 가장 효율적으로 원하는 나라로 제품을 실어 나른다. 인천공항이 없었으면 첨단제품을 팔아 유지되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었을까?
당시 수도권 신공항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 이미 청주공항으로 결정되어 부지매입에 들어가 있던 상황이었다. 그때 우리의 경쟁상대인 아시아의 용들은 국제허브공항의 선점을 위하여 국력을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국제허브공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24시간 운영이다. 그래야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출발과 도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간사이공항, 홍콩의 책랍콕 공항, 중국의 푸동공항, 싱가포르의 창이공항 확장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 모두는 바다를 매립하여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것은 24시간 운영과 미래기술과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정치적 주술에 매달려 국토의 한가운데에 수도권 신공항을 결정하고 추진했다. 내륙 한가운데 위치한 공항은 24시간 운영이 불가하다. 한밤중에 이착륙 소음을 감내할 주민은 없다. 장래에 대한 운신의 폭이 거의 없다. 확장도 어렵고 운항 편수의 증가도 민원을 수반한다. 소음권 보상에 드는 돈은 천문학적이다.
만일 그대로 그냥 갔었다면, 그래서 청주공항이 수도권 신공항이 되었다면 하고 생각하면 그 시기 대통령의 결정은 우리의 미래를 크게 좌우했음을 알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으로 도시의 면모를 바꿨으며, 버스중앙차로로 대변되는 혁신적인 대중교통 운영시스템으로 수도권 교통의 숨통을 틔웠다.
대통령이 되어서는 그 말 많았던 4대 강 사업으로 기후변화의 시대, 전 국토의 홍수 위기를 해결했다. 이것도 예외 없이 극심한 반대를 겪었다.
일반적으로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치수, 즉 하천정비에 대한 투자는 늘 후순위였다. 여름철 홍수기만 지나면 바로 잊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관장 입장에서 도로건설이 훨씬 생색이 나고 주민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자치단체장마저 선거직이 되면서 홍수 대비 투자는 갈수록 뒤로 밀리는 것이 현실이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바뀌자 지류의 정비사업 계획이 지금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 않은가.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강우는 이미 예고되었고 징후는 나라 안팎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홍수는 예측을 뛰어넘는 재앙 수준이고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주도하는 4대 강 사업은 사실상 유일한 극한 홍수방지의 방안이었다. 대통령이 주도하지 않으면 획기적인 투자는 가능하지 않으며, 예전같이 수십 년 늘어지는 치수사업은 단 한 번의 극한 홍수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집중적인 정비가 해답인 셈이다.
만약에 그때 4대 강 치수사업이 없었다면 해마다 되풀이되는 홍수로 수많은 위험과 도시침수로 인한 천문학적인 피해는 되풀이되고 그의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국민은 속절없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천에서는 1980년대 후반 박배근 시장과 이재창 시장의 결정이 인천의 미래를 암울함에서 극적인 발전과 희망으로 바꾸었다. 송도국제도시 건설과 인천공항의 유치가 그것이다.
박배근 시장은 전두환 대통령을 설득하여 그 프로젝트의 싹을 틔웠고, 뒤를 이은 이재창 시장은 노태우 대통령을 설득하여 송도신도시를 승인받고 인천공항의 영종도 유치를 성사시켜 영종도, 용유도, 무의도를 경기도에서 인천으로 가져오고 국제공항을 포함하여 인천으로 통하는 천문학적인 수준의 인프라를 일거에 확보하였다.
뿐만 아니라, 수도권 억제정책으로 철저하게 미래를 차단당한 암울한 상황을 뒤집고 이제는 부산을 추월하기에 이르렀고 전국 시도 중에서 가장 미래가 밝은 도시로 우뚝 서게 되었다. 송도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큰 바이오 클러스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불과 33세의 젊은 도시계획국장이 만든 그 프로젝트는 너무도 거대하고 야심 차서 아무도 가능하리라고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두 시장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는 인천의 쇠퇴를 막을 수 있는 계획임을 알아보는 안목과 불가능을 뚫고 나가보자는 결단을 발휘했다. 그 결단은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공적의지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경기도는 수도권에 있어서 서울 팽창의 혜택을 누리면서 성장해 왔다. 그러다 보니 경기도 자체의 비전을 세우고 발전시킨 흔적을 보기가 쉽지 않다.

